작년 7월7일 저녁 7시 5분에 아내가 얼굴이 동그란 딸아이를 낳았다. 새벽부터 분만실에서 진통을 하였고 아내는 자궁이 열릴 때까지 유도분만제를 맞으며 기다렸으나, 아이의 심박동수가 빨라지자 응급으로 수술을 받고 아이를 낳았다. 


양수에 얼굴이 붛은 아이가 거무 짭짭하고 쭈글쭈글한 피부를 하고 태어났다. 난 감동이 북받혀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수술실에 있던 간호사가 내 스마트폰으로 아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아내는 내심 사내아이를 바라고 있었지만, 난 딸아이라서 너무나 좋았다. 아내와 장모님과의 관계 또 여동생과 엄마의 관계를 보았기 때문에 딸이 태어나면 적어도 엄마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 같아서 좋았다. 나는 아내 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내가 먼저 가더라도 딸아이가 연약한 엄마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도 딸아이를 더 원했었다.


아내는 자연분만을 원하였으나 아이가 위험해 질 수 있다고 하는 순간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제왕절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내는 5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난 아내가 입원해 있을 동안 매일 출퇴근을 했다. 


딸아이의 이름은 Stella 로 하기로 했다. 아내가 여러가지 영어 이름을 추천하였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국사람에게 발음하기 쉽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택하고 싶었다. 약간의 허영심이 있는 아내는 영국의 귀족들처럼 긴 이름을 짓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반대를 했다. 이름은 항상 불리우기 때문에 입에 쏙 달라 붙어야 한다고. 하는 수 없이 아내는 내 뜻을 따라 우리 어머니의 세례명인 Stella를 아이의 영어이름으로 지어 주기로 했다. 


반면 한국이름은 정말로 짓기 쉬웠다. 아내가 추천하는 영어이름을 아무리 들어도 좋은지 나쁜지 판단이 서지 않고 느낌이 어떤지도 감이 안잡혔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의 세례명으로 하기로 하였지만 한국이름은 아내가 꿈을 꾼대로 "다윤"이라고 하였다. 아내의 꿈에 내가 다윤이란 이름으로 출생증명서를 들고 나타났다고 했고 다윤이라는 음이 그렇게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아내는 이름을 짓게 되면 항상"빈"이라는 한자를 쓰고 싶어 했다. 文과 武를 겸비한 아이가 나오길 바랬었고 한자의 문과 무를 합한 글자가 斌이었다. 운동과 공부를 적당히 둘다 잘했으면 하는 뜻으로 욕심장이인 아내의 바람이 나타나는 한자였다.


그리고 그 뜻을 알게 된 나도 빈이라는 자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꿈에 나온 출생증명서에는 다윤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고 아내는 많은 고민을 했다. 옥편을 들여다 보고, 여러 웹사이트의 한자 사전을 찾아보고 빈이라는 글자를 포함한 한자가 있다는 것을 아내가 발견했다. 예쁠윤(贇)이었다. 윤이라는 글자는 나오는 사전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한국이름을 다윤으로 정하였다. 





아이가 나온 날은 7월 7일-음력으로 치면 견우와 직녀가 일년에 한번 만나는 날이다. 원래 예정일은 6월 25일경이었지만 아이는 예정일이 되어도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예정일을 넘자 나는 점점 초조해졌고 매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보았다. 의사는 42주가 넘기 전에 낳는다 했지만 난 불안했다. 왜? 아내가 고생할 것 같아서이고 인터넷에는 39주 넘으면 유도 분만을 한다는 글들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뱃속에 있을 동안 아이는 의사의 말을 잘 들었다. 의사가 지금쯤 머리가 돌아야 되는데 하니까 다음 예약일 까지 돌았고 몇월 몇일까지 진통이 없으면 유도 하자는 아이는 다음 예약 전날 진통을 시작했다. 난 아이가 부모말이나 권위 있는 사람말을 잘 들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이의 생일은 정말로 나와 아내의 만남이 어려운 만남이라는 것을 상징 해 주 듯 했다. 아내는 호주 난 한국에 살고 있었고 어느날 우연이 호주에 와서 만났는데 그 만남이 성사되고 이어지기에는 정말로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로 되었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만날 수 있었다. 


제목이 호주에서 아기 출산인데 일반 출산 일기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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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출산을 17일 정도 앞두고 있다. 

의사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가 예쁜 딸이라고 했다. 

아들이건 딸이건 우선 건강하게만 태어났으면 좋겠다.

아무리 정밀 검사를 해도 피부상태나, 눈상태 귀상태는 태어날 때까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 

우리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출산을 어디서 할 것인가 하고- 공립시스템이냐 사립시스템이냐.

주변을 보면 어느 정도 사는 사람들은 사립시스템에서 출산을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공립에서 출산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공립병원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16주 될때까지 아무런 검진을 해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림시스템을 이용하려고 

사보험에 등록 되어 있는 산부인과의 몇명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첫 검진은 8주 부터라고 했다. 

그 전에 와도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할 수 없다고...

12주 쯤 되면 피검사를 해서 기형아 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와이프랑 상의를 했다.

공립에서 출산을 하면 무료로 출산이 가능하고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데

사립에서 출산을 하면 메디케어 + 사보험을 적용하고도 내돈 $4000-$7000 정도가 들어가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인터넷에서도 둘다 이용한 후기를 읽어 보기도 하고

아이를 공립에서만 출산한 사람 사립에서만 출산한 사람들의 후기도 읽어 보기도 하고 했지만

결정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임신과정과 기간이 수월하면 공립출산도 괜찮은 방법이겠지만

검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출산 때까지 조산사와 간호사에게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즉, 한국에서의 조산원과 비슷한 체계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큰 공립병원과 연계되어 있어

이상이 생기면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진찰을 쭉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사립은 내가 원하는 산부인과의사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의사의 감독과 지시 아래서

임신기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와이프는 비교적 고령의 출산에다가 

무슨 문제가 생길 시 대처능력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우리는 사립으로 가기로 했다. 


인터넷 후기를 읽어 봤지만 

얻은 결론은 얼마나 좋은 Professional을 만나느냐가 관건이었다.

공립을 이용했어도 좋게 평가한 사람도 있었고

사립을 이용했어도 좋지 않게 (돈의 가치에 적합한 진료를 받지 못했다고) 평가한 사람도 있었다. 

둘다 이용한 사람중에서 공립과 사립이 비슷하다고 한사람도 20%정도 되었다. 


하지만 내가 산부인과의사라면 공립병원에 봉사근무를 할 때 열심히 일할까

아니면 내 병원에서 더 열심히 환자를 진료할까 

내가 피곤하면 어느 쪽에 더 신경을 써서 피로를 관리할까 등등 생각을 하고 

사립으로 가기로 했다.

의사는 양심적으로 돈을 받던 말던 간에 환자를 치료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개인 환자에게 신경을 더 써 줄 것 같기 때문에 사립으로 가기로 했다. 

확율적으로 더 좋은 진료를 받고 싶었기에 돈을 써서라도 좋은 진료를 받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임신중 최선을 다 했다고 믿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사립진료에 만족을 했을까? 

다행중 다행으로 와이프는 아직까지 편한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다. 

입덧도 별로 없고, 몸도 가볍고, 당뇨도 생기지 않고, 고혈압도 없고

거의 완벽한 임신기간을 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립으로 갈걸 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의료진에 대한 믿음도 

임신기간 내내 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데 일조 해

임신기간이 순조로웠다는 부부에 대해 한몫을 한 것 같아

사립에 아직까지는 100%는 아니지만 95%정도 만족을 한다. 


진통이 시작되고 출산이 임박하면 100%로 될지 50%로 떨어질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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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을 보유하게 된지 5년이 되었다. 


호주 시민권을 따라는 권유편지가 자주 온다. 와이프에게 물어본다. 시민권 딸까 말까?


와이프는 귀찮게 따지 말라고 한다. 시민권 따면 지역 선거, 주 선거,연방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영어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제대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냐고.


사실 시민권을 딸려면 간단한 역사와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난 어렸을 때 부터 공부와 담을 쌓아 왔기 때문에 공부가 너무 하기 싫다. 시민권을 땄을 때 현재 나의 삶을 송두리 째 바꿀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책을 다시 잡으려면 그만큼의 동기부여가 되어야 한다. 투표권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절실하거나 필요한 권리가 아니다. 정책도 이해하지 못하고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내가 투표권을 남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난 중산층이 아니라 서민중의 서민이다. 내가 나에게 복지 혜택을 더 준다는 당에 투표권을 던짐으로 해서 복지 헤택이 온다면 단기적으로는 나에게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먹고 살 수 있는 내가, 특별하게 복지를 더 받는 다고 해서 내 생활이 더 윤택해질리는 없다.


국회에서 만45세이후 병역을 마친 사람에게는 이중국적을 허용한다는 법안이 계류중이라고 한다. 난 한국에서 군의 의무를 마쳤다. 그래서 만약 시민권을 딴다면 이중국적이 허용된는 날까지 기다렸다 딸려고 한다. 


사실 장인 어른이 합법적인 이중국적자이시다. 현재 만 65세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에게는 이중국적을 허용한다. 장인 어른으 만 64세에 이중국적자가 되셨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 만 65세에 한국으로 들어가셨다. 장인 어른이 40년 가까이 불편함을 무릅쓰고 한국 국적을 유지 한 이유는 한국국적을 버리면 본인의 정체성까지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였고, 그 외, 한국국적을 포기해야 될 경우, 한국에 있는 재산을 1년이내에 처분해야 된다는 법이 얼마전 까지 존재했었기 때문이었다. 실질적인 재산은 얼마 되지 않지만, 장남으로서 장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이 신탁이라는 형태로 장인어른의 명의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못했다. 그리고 만 60세가 넘어 호주 시민권을 신청을 하면 역사와 영어 시험이 면제 되는 행운이 있다.


영주권에 대해 주의가 필요한 점은 5년마다 갱신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Resident Return Visa (주민재입국비자) 라고 해서 호주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체류할 경우 갱신할 필요가 없지만 호주에 재입국을 해야 될 때 비자의 기간이 만료 되어 있으면 해외에서 다시 입국비자를 신청해야 하고 바로 발급이 되지 않을 경우, 일상에 불편을 초래할 일이 생길 수 있다. 내년이면 나의 Resident Return Visa가 만료 된다. 잊지 않고 재발급 신청을 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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